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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에서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바티칸관 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에서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바티칸관  (AFP or licensors)

베니스 교도소에 꽃핀 예술… 바티칸관 관람객 2만 명

인권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주목한 2024년 베니스(베네치아)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바티칸관 전시가 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에서 열렸다. 교황청 문화교육부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예술가, 관람객, 재소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특별한 실험으로, 예술을 통한 치유와 공존의 새 장을 열었다.

Vatican News

지난 7개월 동안 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는 문화적 실험의 새로운 장이 됐다. 2024년 베니스(베네치아)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이하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2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이곳의 바티칸관을 찾았다. 바티칸관의 중심에는 ‘내 눈으로’(Con i miei occhi) 특별전이 자리했다. 교황청 문화교육부 장관 겸 바티칸관 예술감독 조제 톨렌티누 드 멘돈사 추기경이 기획을 총괄했으며, 퐁피두센터 메츠 현대미술관장 키아라 파리시와 전 퐁피두센터장 브루노 라신이 공동 큐레이팅을 맡았다. 이들은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9인을 초청했다. 개념미술의 거장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필두로, 안무가 뱅투 뎀벨레, 레바논 출신 조각가 시몬 파탈, 현대미술 그룹 클레어 퐁텐(제임스 손힐, 풀비아 카르네발레 부부), 브라질 출신 설치미술가 소니아 고메스, 팝아트의 개척자 코리타 켄트, 할리우드 배우 겸 예술가 부부 마르코 페레고와 조 샐다나, 프랑스의 신진 화가 클레어 타부레가 참여했다. 법무부 교정국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진행된 이 혁신적 프로젝트는 새로운 미술관 경험을 선사했다. 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는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재소자들이 예술 프로젝트의 주체로 참여하는 창의적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재소자들은 큐레이터팀, 제작진, 교육자, 교도관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전시 가이드를 맡았고, 다양한 예술 워크숍에도 참여하며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는 예술을 통한 사회적 포용과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시도였다.

개관 초기부터 예약 마감

하루 100명으로 제한된 바티칸관 관람은 개관과 동시에 예약이 마감됐다. 전시 안내는 특별 교육을 받은 재소자들이 도슨트로 활동하며 진행했다. 이 획기적인 프로젝트의 정점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이었다. 지난 4월 28일, 베니스비엔날레 사상 처음으로 현직 교황이 전시장을 찾은 것이다. 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 성당에서 교황은 재소자들과 예술가들을 차례로 만나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여러분에게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낯선 이방인이 아닌, 마치 집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진리일 것입니다. 예술은 하나의 ‘피난처’입니다. 예술은 폭력과 차별이라는 비인간적 질서에 맞서 모든 이를 알아보고, 받아들이며, 보호하고, 품어 안는 새로운 차원의 인간적 연대를 만들어냅니다.”

교도소와 재소자를 향한 교황의 관심

교황청 문화교육부 장관 조제 톨렌티누 드 멘돈사 추기경은 바티칸관의 중요한 성과로 여러 기관이 교도소와의 협력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점을 꼽았다. 멘돈사 추기경은 “이는 교황청에게도 큰 희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실질적인 변화의 시작”이라며 “교정국과 베니스총대주교좌, 이탈리아 인테사 산파올로 은행 등 이 프로젝트를 함께 만든 모든 이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큐레이터 브루노 라신은 “멘돈사 추기경의 요청으로 첫날부터 이 프로젝트에 몸담아 왔다”며 소회를 밝혔다. “키아라 파리시와 함께 기획한 이 전시에 담긴 변화의 힘을 ‘재소자들의 눈으로’ 바라봐주신 추기경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전시는 교황님이 보여주신 교도소와 재소자들에 대한 관심에 응답하고자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낯선 이방인이 되어 오히려 선입견 없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장소를 꿈꿨습니다.” 그는 “예술가와 재소자들과 함께 만든 작품들, 전 세계 관람객과 재소자들의 일상적 만남을 통해 예술이 빚어내는 특별한 나눔과 인류애를 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에 설치된 바티칸관의 작품들
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에 설치된 바티칸관의 작품들

만남에서 시작된 모든 것

“이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에게, 특히 제게 잊지 못할 깨달음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서로를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바로 이것이 예술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요?” 큐레이터 키아라 파리시의 목소리에는 감동이 묻어났다. “이 프로젝트에는 관념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만남에서, 살과 살이 맞닿는 순간에서 시작됐습니다. 특히 재소자들과 예술가들의 만남이 그러했죠. 우리는 참으로 특별한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의지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사회는 평범한 우리에게는 한 번도 묻지 않은 질문들을 그들에게 끊임없이 던졌지만, 그들은 그 시간을 당당히 이겨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가장 가슴 뭉클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요? 그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배움에 대한, 성장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마주했을 때입니다. 도슨트로 활동한 재소자들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그들은 자신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 재소자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됐습니다. 그들은 자부심으로 빛났습니다. 마치 그들이 안내하는 예술작품처럼, 그들 역시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이야기를 품고 있는 존재, 주목해서 바라봐야 할 가치 있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빛나는 예술작품들과 나란히 서서 길잡이가 되는 경험은 우리에게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언론 보도

전시 ‘내 눈으로’는 무엇보다 재소자들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여정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계와 사회에 오랫동안 영감을 줄 것이다. 취재진들은 앞으로도 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를 지속적으로 찾아가 이곳의 새로운 시도들을 세상에 알릴 계획이다. 바티칸관은 전시 기간 내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 일간지와 잡지, 온라인 매체, 통신사와 방송사에서 500여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개관을 앞두고 열린 프리뷰에는 국내외 기자 25명씩 7개 그룹이 초청을 받았다. 스페인의 저명한 건축사무소 COR 아키텍츠와 이탈리아 전시 디자이너 플라비아 키아바롤리가 구현한 혁신적인 전시 공간이 세계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자리였다. 8개월의 전시 기간 동안 브라질, 중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미국 등 총 115개 매체가 이곳을 다녀갔다. 이 프로젝트는 도록으로도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키아라 파리시와 브루노 라신이 편집하고 이르마 붐이 디자인한 도록은 이탈리아의 예술 전문 출판사 마르실리오 아르테에서 출간됐다. 위르겐 텔러와 마르코 크레마스콜리는 사진으로 프로젝트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담아냈고, 큐레이터들의 작업 과정과 9명의 예술가들이 재소자들과 나눈 대화도 꼼꼼히 기록했다. 재소자들은 다양한 예술 워크숍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클레어 퐁텐 듀오는 이스라엘의 물리학자이자 유도 전문가 모셰 펠덴크라이스가 개발한 신체 움직임 프로그램을 활용해 워크숍을 진행했다. 코리타 아트 센터는 코리타 켄트의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글쓰기와 드로잉을 통한 예술 표현 워크숍을 열었다.

비엔날레에서 교황청의 역할 정립하기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주데카 여성 전용 교도소 재소자들의 협업으로 특별한 결실도 맺었다.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의 부록 「로세르바토레 디 스트라다」 특별호를 재소자들이 직접 편집한 것이다. 이 특별호는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안무가 겸 무용수 뱅투 뎀벨레는 ‘통과의례: 독무 II’의 새로운 버전을 비공개로 선보였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 현대무용의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무용수 미치 오노모가 무대에 올렸다. 이러한 워크숍과 대화들은 바티칸관의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어져온 예술가들과 재소자들의 협업 정신을 보여준다. 시몬 파탈은 재소자들과 시 워크숍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고, 클레어 타부레는 재소자들의 개인 사진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았으며, 마르코 페레고와 조 샐다나는 영화 제작 과정에 재소자들을 참여시켰다. 비엔날레의 마지막 날, 소니아 고메스는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플리니오 페르난데스의 특별 공연을 재소자들을 위해 마련했다. 바티칸관은 또한 여러 국제 대학들과 협력해 예술과 사회를 주제로 한 학술 프로젝트들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들의 결과는 곧 교황청 문화교육부 누리집에 공개될 예정이다.

교황청 문화교육부는 앞으로의 비전도 제시했다. 오는 2025년 5월 10일부터 11월 23일까지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제19회 국제건축전에서도 교황청의 참여가 이어진다. 교황청 문화교육부는 이미 베니스 시와 협의를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비엔날레라는 세계적 문화예술 축제에서 교황청이 담당할 고유한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번역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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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1월 2024,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