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종교와 정치는 건강한 관계로 공동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Salvatore Cernuzio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15일 프랑스령 코르시카 섬 사도 순방 첫 일정으로 아작시오 컨벤션센터 바깥으로 빛나는 “세 대륙 사이를 흐르는 거대한 ‘호수’”, “문명의 요람”이자 “세계 유일의 바다”인 지중해를 바라봤다. 교황은 이번 방문의 주요 목적이자 첫 공식 일정인 ‘지중해 지역의 대중 신심’에 관한 회의에서 신앙, 대중 신심, 특히 “건전한 세속성”(sana laicità)이라는 주제에 대한 긴 연설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프랑스의 헌법 원칙들 중 하나인 ‘라이시테’(laïcité, 세속성)는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규정하는 독특한 개념이다.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권고 「중동 교회」(Ecclesia in Medio Oriente) 29항을 인용하며 이를 설명했다. “건전한 세속성은 정치 활동이 종교를 조종하지 않도록 보장하고 종교 생활이 이익에 좌우되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익을 따르는 정치는 때로는 종교적 신념과 거의 양립될 수 없거나 아니면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세속성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일치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기에 정치와 종교 두 분야 모두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여러분은 이 사안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왔고 유럽의 모범이 되어 왔습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세요!”
지중해 지역의 대중 신심에 관한 이틀간의 회의
‘우리의 바다’(Mare Nostrum)인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지역에서 약 400명의 학자, 주교, 대학 교수, 각계 대표들이 모여 교황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참석자들은 컨벤션센터 대강당에 들어서는 교황을 뜨거운 박수갈채로 맞이했다. 지역 당국자들과 이틀간의 행사를 주최한 아작시오교구장 프랑수아자비에 부스티요 추기경이 교황과 함께 입장했다. 이에 앞서 교황은 처음에는 밀폐된 차량으로, 이후에는 개방형 차량으로 해안도로를 지나며 모여든 신자들의 환영인사에 답례했다. 교황은 성 요한 세례당에도 들렀다. 6세기에 지어진 이 세례당은 2005년 주차장 공사 중 발굴된 역사적 유적이다.
문명의 요람, 신화의 무대, 신앙의 터전
교황은 지중해와 그 주변에서 발전한 문명들에 대한 짧은 역사적 개요로 연설을 시작했다. 교황은 지중해가 신화와 전설의 무대이자 소통의 장이었다며,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시의성 있는” 원칙들을 간직한 법률 체계와 제도를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중해가 근동 지역과 함께 “매우 특별한 종교적 체험”의 발상지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체험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계약이 완성”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역사의 여러 순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사람들의 삶과 정치 제도의 근간을 이뤄냈지만, 오늘날 특히 유럽 국가들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물음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분의 현존과 말씀에 대해 날로 무관심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자와 비신자 간의 열린 마음
교황은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분석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리스도교 문화와 세속 문화를 대립시키는 성급한 판단이나 이념적 해석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교황은 신자와 비신자 간의 “상호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 오늘날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강요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데 더욱 평온한 마음을 보이고” 있는 한편, 비신자들이나 종교 생활에서 멀어진 이들은 “진리와 정의, 연대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절실히 품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의 마음속에는 공동선을 위한 근본 가치를 찾도록 이끄는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물음”이 자리 잡고 있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소외된 이들부터 시작해 모두를 위해 함께 일합시다
교황은 바로 이것이 신자들과 시민 단체 및 정부 기관들이 “모든 이를 위해, 특히 가장 소외된 이들부터 시작해 온전한 인간 성장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터전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런 의미에서 세속성은 “정적이고 경직된 개념”이 아니라 “진화하는 역동적 개념”이라며, “각자가 자신의 권한과 영역 안에 머물면서 전체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시민 당국과 교회 당국 간의 지속적인 협력”을 증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전한 세속성은 종교가 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정치도 종교의 기여로 풍요로워지게 하며, 종교와 정치가 서로 필요한 거리를 유지하고 명확한 구분을 두며 필수불가결한 상호 협력을 하게 해 줍니다.”
교황은 이런 방식을 통해 “선입견이나 원칙적 대립 없이 더 많은 에너지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며 “열린 대화, 솔직하고 결실 있는”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중 신심의 아름다움
교황은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 신심의 중요성과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 48항에서 “종교심이라고 하기보다는 대중 신심”이라고 일컬었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상징과 관습, 예식과 전통, 신심단체들의 자선활동과 묵주기도 등 코르시카에 깊이 뿌리내린 대중 신심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꽃피어 왔다면서, 이 모든 신심활동은 그리스도인들이 “건설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돼 왔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연설 원고를 잠시 내려놓고 “종종 몇몇 지식인이나 신학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대중 신심이 “신앙의 문턱에 머물러 있는 이들의 마음도 움직인다”며, 이들이 대중 신심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되찾고 마음의 고향을 체험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들의 삶과 사회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이상과 가치도 함께 발견한다”고 설명했다.
“대중 신심은 사람들의 문화에 뿌리내린 소박한 몸짓과 상징적 언어로 신앙을 표현하며, 이를 통해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교회와의 유대를 더욱 굳건히 합니다. 또한 종종 만남과 문화 교류의 장이 되고 축제의 기쁨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축제의 기쁨이 없는 신심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진정 사람들에게서 나온 신심이 아닙니다. 그저 너무 정제되어버린 신심일 뿐이죠.”
대중 신심에 대한 각별한 주의
교황은 대중 신심이 “논쟁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특수주의와 대립, 배타적인 태도를 조장하려는 집단들에 의해 이용되거나 도구화될” 위험이 있다고 경계했다.
“대중 신심이 한 민족의 그리스도교 신앙과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공동체를 결속시킬 때, 사회 전체는 물론 시민 단체 및 정부 기관과 교회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교황은 “신앙이 사적인 사안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원고를 내려놓고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우리는 신앙을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만 간주하려는 위험한 경향을 경계해야 합니다.”
“친밀함”의 의미
교황은 “사랑의 표징 안에서 모든 이의 인간적 성장과 사회적 진보, 피조물 보호를 위한 헌신과 증거”를 요청했다. 아울러 이러한 토양에서 종교계와 세속 사회 간의 “끊임없는 대화”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특별한 당부를 전했다. “건전한 이상의 열정과 공동선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사회·문화·정치 생활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주십시오.” 또한 사목자들과 신자들, 정치인들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들에게도 마음을 전했다. “언제나 사람들 곁에 머물러 주십시오. 그들의 필요를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희망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권위는 이처럼 가까이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이러한 친밀함을 간직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가까이하고, 다른 목자들을 가까이하며, 늘 곁에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이런 이들이 참된 목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친밀함이 없는 목자, 심지어 역사와 문화를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은 그저 ‘신부님’ 소리만 듣는 사람일 뿐, 참된 목자는 아닙니다!”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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