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사도 문서고 소장 도서 (자료사진) 바티칸 사도 문서고 소장 도서 (자료사진)   사설

교회의 어제로 오늘의 신앙을 살아내다

11월 21일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한 「교회사 연구의 쇄신」의 의의를 살펴본다. 이 서한은 신학자들에게 교회사를 깊이 연구하도록 초대하며, 그 안에서 성령의 활동이 온전히 드러나길 바라고 있다.

Andrea Tornielli

현대 가톨릭 역사학의 선구자인 체사레 바로니오에게 성 필립보 네리 신부가 자주 했다는 말이 있다. “우리 학생들이 교회사를 더 이상 모르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와서 가르쳐 주게. 역사를 모르면 결국 신앙도 잃게 될 테니 말일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21일 발표한 서한 「교회사 연구의 쇄신」에서 분명히 보여주듯, 역사 연구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난 8월 교황 서한 「양성에서 문학의 역할」을 통해 문학의 중요성을 다룬 바와 마찬가지로, 교황은 이번에도 사제 양성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우리 모두에게 맞닿아 있는 주제를 짚어냈다. 

교회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기억을 지키고 미래를 일구는 일이자,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길잡이다. 

젊은이들이 역사의 깊이를 헤아리고, 단순한 구호에 현혹되지 않으며, 거짓과 편향으로 가득한 수많은 “뉴스” 홍수 속에서 진실을 가려낼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성 필립보 네리 신부의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역사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한다.

하느님의 아드님의 강생과 죽음, 부활은 인류 역사를 “이전”과 “이후”로 가른 사건이다. 가톨릭 신앙은 무엇보다도 이념이나 철학, 도덕이 아니라 관계이자 삶이며, 구체적 현실이자 역사다.  

우리는 어머니에서 아들로, 아버지에서 딸로, 조부모에서 손주로 이어진 증언으로 그리스도인이 됐다. 이 신앙의 연결고리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님의 공생활을 날마다 함께했던 첫 증인들인 사도들에게 닿는다. 

신앙의 눈으로 비추어보는 이러한 역사 사랑은 교회의 영광스럽지 못한 순간들, 어둠의 장면들까지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한다. 

“편견의 눈을 거두고 연구하십시오. 교회에는 거짓이 아닌 오직 진실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889년, 레오 13세 교황이 지금의 바티칸 사도 문서고를 개방하며 남긴 말이다. 

역사를 파고들다 보면 어김없이 과거의 “아픔”과 “세월의 결”을 마주하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회사는 우리에게 교회의 참모습을 보여주어 있는 그대로의 교회를 사랑하게 하며, 교회가 자신의 허물과 넘어짐을 통해 배워온 지혜와 지금도 배우고 있는 깨달음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자신의 가장 어두운 시간까지 마주할 때라야 교회는 오늘날 세상의 “상처와 아픔”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다. 

교황의 관점은 현실을 미화하려는 왜곡된 호교론과도, 교회를 악인들의 온상으로 매도하는 이념적 편향과도 거리가 멀다. 

실상 교회가 자신의 모든 과거를 진실되게 마주한다면 더욱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인류 구원이란 화려한 사목 전략이나 시류에 영합하는 개인의 영향력이 아닌, 오직 주님의 손길 안에서 이뤄지는 신비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번역 고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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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1월 2024, 21:43